11. 청백리(淸白吏)를 배출한 가문
청렴결백한 관리양성과 장려를 위한 목적으로 중국에서 도입한 제도로서 우리나라에서는 3대 태종 이후부터 시행하였다. 조선 중기까지는 생존자에게 주어졌으며 후기에는 사망한 자에게도 주었고 녹선된 당자에게는 품계가 가자(加資)되었다.
망자에게는 증직이 되었고 후손인 적장자에게는 천거로 음직에 나아갈 수 있고 녹봉이 주어졌으므로 사례와 함께 만백성의 추앙을 받았다.
의정부와 육조의 정2품 이상 당상관과 사헌부, 사간원이 천거하여 녹원 되었으며 순조대까지 217인이 녹선 되었다.
해주 정씨로서 청백리로 녹선된 분은 다음과 같다.
..3세 역(易) ......태종조
..6세 미수(眉壽) 중종조
..7세 석견(錫堅) 성종조
그밖에도 8세 신당 붕(鵬)공이 청송부사로서 <정승 성희안의 꿀과 잣을 구해 달라는 청을 거절한 이야기>가 해동명신전, 문헌통고 등에 전해온다.
 
※ 참고사항 정중부(鄭仲夫)
고려 의종(1127 ~1173)때 보현원(오늘날의 도라산역)에서 무신의 난을 일으킨 정중부(鄭仲夫)는 역사서에 ‘해주인' 또는 ‘고향이 해주'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최근 “무인시대”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자 해주정씨와의 관계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하고있으나 시조(諱, 肅)보다 시대가 앞서 있으므로 우리의 선계라고 확증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