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남자"에 나오는 정종의 이해(2)

정기환 1 5,567 2011.09.29 12:27

세령공주는 세조(수양대군)에 반기를 들다가 결국에는 노비가 되어 신면에게 하사된다.


신면은 노비가 된 세령이지만, 알뜰히 보살핀다.


하지만, 신면의 영원한 방해꾼, 김승유가 등장해서 세령을 빼돌린다.


그런데 김승유는  유배를 떠난 정종의 밀서를 보고, 광주로 떠나려 하였지만, 세령이 신면의 집에 노비로 갔다는 말을 듣고, 계획을 변경하고 신숙주의 집에 처들어가 세령을 구하고 또다시 애마부인을 찍는다. 작가가 어릴 적 애마부인을 무척 사랑했던 모양이다. 시도 때도 없이 세령과 김승유를 말에 태우니 말이다.

죽음을 앞에 둔 이들 커플은 만나기만 하면 키스신을 남발한다. 사랑을 확인하고 이들 세령과 김승유의 사랑이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다는 암시와도 같다.

 


문제는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민폐를 끼치는 역할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단종복위를 꿈꾸던 김승유가 광주로 가서 정종과 밀약을 하고 거병을 하는 게 합당할까? 아니면 신면의 집에 들어가서 세령을 구하는 게 급할까? 철통같이 방어를 하고 있는 신면의 집에서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물론, <공주의 남자>는 시대배경이 계유정란 이후를 그린 시대 멜로물이다. 명분도 명예도 없다. 무조건 “사랑밖엔 난몰라“하면 되는 극히 유치한 드라마임에는 틀림이 없다. 멜로물은 유치찬란할수록 재미가 있는 건 사실이다.


유치찬란한 멜로를 보고 승유와 세령의 사랑을 지켜주세요. 정종과 경혜공주의 사랑도 지켜주는 해피엔딩으로 만들어주세요. 자식을 노비로 보내는 폐륜아 세조 나쁜넘, 신숙주, 신면, 사육신 안타깝다,라는 멜로가 역사인 듯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넘쳐나서 우려스럽지만 말이다.

이에 대해서 비판하면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라는 유딩들도 하지 않는 말을 너무나 뻔뻔하게 하는 인간들이 가끔씩 있는 게 아니고 넘처난다.

그냥 시대배경만 빌려온 <추노>나 <최종병기 활>처럼 멜로만 하면 안될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왜 자신도 없는 역사에 똥물까지 퍼부어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수가 없다. 재미를 위해서 역사는 빌려오지만  망가져도 된다는 발상은 끔찍하기 까지 하다. 박시후, 문채원, 이민우, 홍수현, 송종호, 이호정, 김영철, 이순재라고 극중에서 배우 이름으로 부른다면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


시대를 알고 역사를 알고 보면 <공주의 남자>는  한편의 눈물없이 볼수 없는 원수를 사랑한 김승유가 아닌 원수와 한편이 되어 아버지 김종서를 모욕한 황당극일 뿐이다.

김승유에게 정종과 사육신이 얼마나 철천지 원수인지 알고 싶다면 다음 글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최소한 자녀들에게는 드라마와 역사는 어떻게 다른지 설명정도는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김종서를 죽이는데 앞장선 사육신과 김승유가 한편이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작가는 오르가즘을 느끼겠지만 말이다. 최소한 비스무리라도  해야 극에 몰입을 할수 있는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시청자를 속이는 재미가 솔솔한 건 사실이다.

속이더라도 하얀 거짓말로 속여야 재미가 있는데 새빨간 거짓말로 속이면 속는 사람도 나중에 기분이 좋을리는 없다. 드라마를 보고 사실인것 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민망하기까지 하다. 설마 드라마 작가가 거짓말을 했겠느냐고 반문하면 당황스럽다.
 


어쨌든, 빙옥관의 조석주가 김승유와 함께 세령을 구하고 빙옥관의 주인 초희의 안부가 걱정이 되어 빙옥관에 돌아왔을 때, 사랑하는 여인 초희의 목에 칼이 들어올 때 순순히 잡히고, 빙옥관의 주인이 조치수를 살리기 위해서 김승유가 광주로 갔다는 말을 너무나 쉽게 한 이유도 대의, 명분, 정리가 무슨 소용 살고 봐야지 사랑이 최고야.<사랑>으로 다 해결되는 문제이다.



공주의 남자에서 1456년 6월 1일 단종복위에 실패한 사육신은 죽고, 같이 참여한 정종은 세조(수양대군)의 바다와 같은 은혜를 입고 광주로 유배를 떠났다. 정종과 경혜공주는 단종복위 전날 5년 만에 처음 사랑을 나누고 정미수를 임신한다. 정종과 경혜공주는 아들일까 딸일까? 경혜공주만 닮은 딸이었으면 좋겠다며 행복한 순간을 보낸다.


여기서 정종을 닮은 아들을 낳게 해달라는 대사를 치면 그날로 공주의 남자 제작진은 남녀차별로 난타를 당할 것이 자명하다. 작가가 <공주의 남자> 주시청자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부터 공주의 남자는 역사를 망쳐서라도 절대다수는 아니더라도 여성들을 대리만족 시키기 위해서 기획된 드라마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해주고 넘어갈 만하다. 공주의 남자에서 김승유와 세령이 말이 아닌, 오픈 스포츠카나 KTX나 국내항공편을 이용해서 내려간다는 설정을 해도 상관이 없다. 어짜피 공주의 남자는 시대를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드라마에서 아직까지 경혜공주는 노비가 아닌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경혜공주가 노비로 떨어지는 때는 정종이 죽은 다음이다. 이긍익의 열려실기술에 정종이 죽고, 경혜공주가 공노비가 되어 순천부사 여자신에게 모욕을 당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정종(鄭悰) 


본관은 해주(海州)인데, 문종의 부마(駙馬)이다. 경혜공주(敬惠公主)에게 장가들어 영양위에 봉해졌다. 시호는 헌민공(獻愍公)이다.


○ 공이 적소에 있다가 사사된 뒤에, 공주가 순천 관비가 되었다. 부사 여자신(呂自新)은 무인인데, 장차 공주에게 관비의 사역을 시키려 하니, 공주가 곧 대청에 들어가 교의(交椅)를 놓고 앉아서 말하기를, “나는 왕의 딸이다. 죄가 있어 귀양은 왔지마는, 수령이 어찌 감히 나에게 관비의 사역을 시킨단 말이냐.” 하므로 마침내 부리지 못하였다. 여자신은 뒤에 벼슬이 형조 판서에 이르렀는데, 여유길(呂裕吉)의 방조(旁祖)이다.


- 연려실기술(이긍익) 단종고사본말 정난에 죽은 여러신하


영.정조 시대 이긍익이 열려실기술을 쓴 1777년 이전부터 문종의 경혜공주 공노비는 사실처럼 퍼져 있었던 듯하다. 열려실기술 말고도 윤근수(1537~1616)가 지은 <월정만록>에도 경혜공주가 공노비였다고 기록하고 있고, 안정복(1712~1791)의 <순암집>도 경혜공주 공노비는 사실처럼 되어 있었다. 다만, 안정복의 순암집은 순천부사가 아닌 장흥의 관노라는 사실만 다르다.
 

소릉의 어머니 최씨(崔氏)와 소릉의 아우 권자신(權自愼)이 처형되었으며, 영양위(寧陽尉) 정종(鄭悰)이 처벌당했으며, 경혜공주(敬惠公主)가 장흥(長興)의 관비(官婢)가 되었으며, 심지어는 단종(端宗)의 왕비(王妃) 송씨(宋氏)까지 관비로 되었습니다.  - 안정복 순암집



아직까지도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중에 연려실기술을 들어서 경혜공주가 노비가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정조는 경혜공주의 관노비설을 사료비판을 통해서 허구라고 증명을 한다. 더군다나 정종과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에 대한 이야기도 사료를 들어서 허구라고 증명한다.



《홍재전서》는 1799년(정조23) 12월에 1차 정리되었고, 1801년(순조1) 12월에 2차 정리되었으며, 1814년 3월에 간행되었다. 홍재전서는 정조(이산)의 왕세자 시절부터 죽기전까지의 개인의 시와 저술 자료를 총망라한 개인문집이다.


정조 이산, 경혜공주 순천유배 사실은 없다.
 

윤근수(尹根壽)의 《월정만록(月汀漫錄)》을 상고해 보면, 종이 죽고 나서 공주가 순천(順天) 고을의 노비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세조실록》에 의거하면, 기묘년(1459, 세조5)에 광주(光州)에 안치된 정종과 그의 아내에게 의복을 내려 주었을 뿐, 그 뒤 순천으로 유배한 사실은 없다.


실록의 초본(抄本)에만 경진, 임오, 을유, 병술 4년이 빠져 있으니, 이는 아마 참고될 만한 사실이 없어서 생략한 것이겠고, 《월정만록》은 당연히 오류이다.


그러나 지금 신사년(1461, 세조7)에 소환한 것으로 적으면서 특별히 영양위(寧陽尉)의 묘지문을 증거로 삼았으니, 당시에 이미 영양위가 죽었다는 사실 역시 믿을 만하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 된다? 사실은 진실과 허구 왜 퍼졌을까?을 참고하기 바란다. 

정조가 유학자에 뛰어난 역사학자라는 것이 다시금 증명이 되고, 똑똑한 정조가 신하들을 왜 비난을 하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첫 임신한 경혜공주가 출산한 영아는 딸일까? 아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들 정미수다.

그런데 정미수는 드라마처럼 단종복위를 위해 거사를 하는 1456년 6월 1일 전날 저녁에 처음 경혜와 정종이 사랑을 하면서 만들어졌을까? 그리고 경혜와 정종은 광주 유배지에서 처음 알았을까?

이 또한, 이산 정조는 그럴수 없다고 다시한번 사료비판을 한다. 더불어 정미수는 정종의 유복자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글쓴이도 정조(이산)의 견해에 동조하며 더나가 유복자로 알려진 정미수가 언제태어났는지 증명하려한다.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다음글에 계속..

2011/09/29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이산 정조, 정종과 경혜공주 아들 정미수는 유복자가 아님을 증명하다

2011/09/28 - [역사이야기] - 공주의 남자, 경혜공주 노비 된다? 사실은 진실과 허구 왜 퍼졌을까?

Comments

정덕근 2011.10.01 03:36
역사와 선조에 대하여 많은 공부가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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